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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성인

루르드의 마리아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프랑스의 루르드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시골 소녀 베르나데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을 말한다. 3월 25일 발현 때 성모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는 베르나데타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다”라고 답하셨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 교회의 교도권은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 바 있다.

초대 교구장인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는 부임 직후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 주보성인으로 선포하고 성모님께서 모든 것이 미비한 신생 교구의 재정을 맡아 주실 것을 청하였다. 축일은 2월 11일이다.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1년 이탈리아의 아씨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다가 투옥되고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중병을 앓았다. 병이 회복된 후에 스뽈레또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고 “내 교회를 고치라” 는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 때 들은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가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산 다미아노’에서 성당을 수리하려고 했는데 이때부터 부친과 결별하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통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1208년 미사 중에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성소가 교회를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당시 혼란했던 사회적 환경 속에서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이해하고 ‘복음적 가난’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설교하였다.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 1210년 교황 인노센시오 3세가 극도의 가난을 살려는 그와 동료 11명을 인정하였는데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하며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으며 수도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대단한 선교 열정으로 무슬림인에게 복음을 전하려 찾아간 적도 있고 1219년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까지 갔다가 포로가 되기도 했다.

1212년 성녀 글라라와 함께 ‘가난한 부인회’를 창설하였으며 1224년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던 중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을 최초의 공식적인 오상이라 한다. 오상은 그의 생애 끝까지 계속되었고 마침내 1226년 10월 3일 죽음을 맞이하여 1228년에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