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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합시다
작성자 조윤희
작성일 2019-02-03 (일)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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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4.xxx.183
시간 전례의 신학(2)
1) 시간 전례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한다”(총지침 6항). 왜냐하면 전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경배를 통해서 구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는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그분의 기도의 한 몫을 이룹니다.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또 우리의 기도를 받아들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인식해야 한다”(총지침 7항 인용)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는 성체성사 거행에서만 현존하시고 구원의 능력을 일으키실 뿐 아니라, 시간 전례 거행에서도 현존하시고 구원의 능력을 일으키십니다. 시간 전례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합니다.

2) 시간 전례는 교회의 기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은 믿는 이들과 구원된 이들을 성령으로부터 새긴 하느님의 백성, 곧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불행히도 이 영적인 실제는 자주 역사상의 제도로서만, 그리고 외적인 조직으로만 이해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미 그 단어에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이렇게 이해된 교회는 人間을 향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에 대해, 성찬례 안에서 감사와  찬미의 응답을 드릴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청원기도를 바치는 것을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처음부터 ‘기도하는 교회’로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 행위는 시간 전례 안에서 그 본질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교회가 기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써 교회는 자기 본질을 완전케 하며, 교회가 교회이어야 하며, 교회가 될 수 있는 그 힘을 창조한다”(K. Hemmerle, ‘교회의 기도’).

 이제 누가 교회의 지체로서 이 기도에 참여하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인간 구원을 지향하는 교회의 자기실현을 이루는데 협력하게 됩니다.  “이 기도를 바치는 모든 이는 성교회의 임무를 완수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배필의 가장 훌륭한 영광의 한 몫에 참여하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면서 자모이신 성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어좌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전례헌장 85항).

3) 시간 전례는 원래 공동체의 기도이다.
 전례헌장과 지침은 시간 전례의 공동체적 성격에 특별한 가치를 둡니다. 왜냐하면 시간 전례는 개인적 성격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동체로 거행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바치는 것보다 우선합니다. 총지침은 원래 공동의 시간 전례 의무가 지워지지 않았던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뿐 아니라 평신도 단체와 본당들도 “가능한 한 주요 시과경을 교회 안에서 공동으로 바쳐야 한다”(총지침 21항)고 요청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초대받아 함께 모일 때, 그들은 마음과 목소리를 합쳐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는 교회를 드러내준다”(총지침 22항. 27항 참조).

4) 시간 전례는 제 시각에 수행되기를 요구한다.
 “시간 전례의 목적은 하루 전체와 모든 인간 활동의 성화에 있으므로, 이들 시과경의 순서는 현대생활의 여건을 감안하면서 각 시과경들이 바쳐지는 하루의 제 시간에 가능한 한 부합하도록 다시 꾸며졌다”(총지침 11항). 그러므로 아침기도를 오후에, 저녁기도를 아침에 바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납니다. 실제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제들에게는 밤중기도와 아침기도를 전날 오후에 미리 바치고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이른 아침에 기도드리는 것을 관습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결부된 의무 성격으로 인해 저녁에는 사목적인 의무 때문에 기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 특정한 사람과 공동체는 시간 전례를 의무화한다.
 이 의무는 외부에서 오는 “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하나의 외적인 의무로써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마지못해 거행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전혀 다르게 할 수 없는 내적인 의무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무에 대한 결단은 기도에 대한 내적 당위성을 내포합니다. 주교들에게 이 의무는 교구를 위한 기도에서 생겨나고, 사제들을 위해서는 이 의무는 본당을 보살피는 직무 봉사자가 되는 데서 생겨납니다. 본당 공동체는 지역 교회의 지체입니다. 사제는 공동체의 직무수행자로서 그리스도를 대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단의 첫 번째 기도자이시며 기도의 모범이셨습니다.
의무는 외적 의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명령이라는 말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시간 전례는 위임하는 명이 됩니다. 교회 안의 기도는 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과 보다 강한 결속 관계를 가집니다. 의무는 기도를 인격적으로, 실존적으로 바치는 것을 내포한다. 외적인 것이 내적인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힘들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이 기도가 어떠한 나라와 어떠한 시대에서도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성사적 품계의 소유자들인 성직자들과 수도 공동체 수도자들에게 이 시간 전례를 위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구성원인 하느님 백성들에게도 예수님을 닮아 깨어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도록 권고합니다.
올바르게 거행된 시간 전례는 신앙인 각자 개인의 신심을 촉진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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