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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합시다
작성자 조윤희
작성일 2019-02-03 (일)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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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4.xxx.183
교회 기도의 본질(1)

우리 범어본당은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 때 매일 아침미사, 저녁미사와 시간 전례를 함께 바칩니다. 이 시간 기도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주제별로 구분지어서 살펴봅니다.

 교회의 근본사명은 인간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이룩하셨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활동을 이 세상에서 계속해 나가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서 당신 삶과 행위와 더불어 세상에 살아계십니다.  그러나 계약은 충실함에 그 뿌리를 둡니다. 하느님 편에서의 충실함은 변함이 없지만 그러나 인간 편에서의 충실함은 언제나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시간전례는 이러한 관점 아래서 충실함에 대한 표지로 나타납니다. 계약의 동반자인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충실하시고 다른 상대인 인간은 자신의 기분에 좌지우지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순서에 입각해 이 기도를 바칩니다.
 선하시고 충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은 계약의 대화적 특성인 기도로 나타납니다. 이 같은 인간의 기도 방향은 먼저 감사하고 찬미하는 형태이며 두 번째는 하소연하고 간청하는 형식을 가집니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계약은 인간에 의해서 위협받는 계약이며 인간의 자유로운 파기에 충실함이 파괴됩니다.
 인간에게 향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말씀의 차원을 가지듯이 하느님을 향하는 인간의 사랑도 같은 차원을 가집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으로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또한 인간으로서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가르치시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삶의 여정 안에서 실천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과 삶은 서로를 완전하게 하고 서로가 진실임을 증명한다는 점입니다. 말씀은 가장 분명한 선언이지만 삶은 그러나 보다 강렬하고 확정적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기도 안에서 말씀의 요소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삶이 증명해줄 때 믿을 만합니다. 만약 기도가 생활 안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빈 꽹과리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주여, 주여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기도가 하느님께 향하는 인간의 사랑을 결정하는 표본이 아니라, 바로 삶이 그 표본이자 척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경과 찬양이며 또한 피조물을 통하여 창조주께 대한 감사와 찬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불의를 겪은 사람들의 하소연, 해방시켜 주기를 간구하는 청원도 있습니다. 탄식, 하소연 그 이면에는 구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넘친 간청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찬양이 됩니다(시편 22편 전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의 기도는 기도하는데 표본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만을 염두에 둡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기도드립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배요, 목자를 따르는 양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그분에게 있어 삶과 기도는 언제나 함께 자리하고, 서로 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루의 날을 하느님 편으로 세우기 위해서 하루의 중심축인 아침과 저녁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기도는 일하고 활동하는 하루 전체를 성화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기도는 언제나 다가오는 것을 예상합니다. 아침기도에서는 오고 있는 시간에 방향을 두고 있음이 청원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저녁기도는 다가오는 밤을 미리 예견하는 것으로써 하느님은 밤에도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기에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교회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에 따라 세상의 성화에 봉사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도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장소나 시간, 순서가 기도를 기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가 기도를 기도로 만들어 줍니다. 입술로 바치는 기도와 삶을 통한 실증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삶과 기도가 서로 분리되는 위험은 모든 종교에 있어 왔으며 그리스도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오 복음 5. 6. 7장은 우리가 많은 말을 하는 이교도처럼 기도하지 말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전시하고 싶어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기도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기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은 전례적 기도가 가질 수 있는 위험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전례를 위한 노력이 가끔은 하느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기 보다는 인간적인 칭찬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회의 기도는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항상 응답입니다. 이점에서 교회의 기도는 타종교의 기도 원칙과는 구분됩니다. 타종교에서의 기도 원칙이란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기도해서 신을 감동시켜 신이 자신의 선행에 보답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방향전환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이 주도권을 행사해서 기도하러 온다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도는 하느님의 손길에 대한 응답이기에 교회적 기도의 내용도 하나의 서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 자리는 경배・감사・찬미가 자리하고 둘째 자리에 신자들의 기도 그리고 셋째 자리에는 애소와 간청이 자리합니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데서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적인 기도 안에서 하소연과 탄식을 제외시켜 버리면 그 기도는 세상의 구원불능 상태에 대해 오불관언하는 태도가 됩니다. 교회의 기도는 자기 신앙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신앙이 담고 있는 신앙의 내용, 신앙의 구조 및 서열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을 결정한다” 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의 기도는 순서가 필요하며 단순히 임의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시대의 신앙은 기도의 꼴을 만들고, 기도의 관습은 동시에 신앙을 형성합니다. 시간전례는 교회의 공적 전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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